기숙사 2인실 동반자
이 게시물의 내용은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허락을 맡았으며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형, 동생으로 지금은 룸메이트로 1년을 같이 보내게 됨을 알립니다.
기숙사 1인실에서 살다가 2인실로 오게 된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돼가고 있다. 아무래도 1인실에서 편하고 넓게 혼자 살다가 2인실로 오게 되니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많은 짐을 놓을 공간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같은 방을 쓰면 그 사람의 눈치도 봐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룸메이트가 1학년 때부터 같이 알고 지내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은 상문 Park 상문이는 똑똑한 아이다. 내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고 상문이는 내가 군대를 전역할 때쯤에 군대에 가서 무려 4년 동안을 못 봤지만 우리는 늘 카카오톡으로 인해 서로의 행방을 잘 알 수 있었다. 😊
상문이는 전역하고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복학생이었다. 우리는 서로 룸메이트를 구하는 도중에 서로 합의 하에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나는 상문이를 오랜만에 볼 생각에 기뻤다.
미리 입주해서 대기하고 있었던 나는 곧 만나게 될 상문이와 카톡을 하던 중 상문이가 자기 자리에 피규어를 가져와 놓을 예정이라고 말하자 나는 건담 피규어, 아니면 멋있는 캐릭터 피규어를 상상했다.
와 저런 피규어 대게 비싼데…
처음엔 알지 못했다… 상문이의 그녀?가 올 거란 것을…
상문이의 입주 날이 오자 나는 1층에 내려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무래도 4년 만에 보는 거라 알아볼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역시나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 멀리서 봤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먼저 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반갑다~! 상문이 ㅠㅠ”
우리가 지내게 될 방으로 상문이를 안내하고 짐을 푸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짐을 정리하던 상문이는 헤쭉 웃으며 자랑스럽게 나에게 자신의 피규어를 자랑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뭐지 이 상스럽고 남사스러운 피규어는…
“상문이가 이런 애였나?… 아닌데…“
“내가 알고 있던 상문이는 매우 정상적?인 Normal한 애인데…. 이 오타쿠 냄새나는 피규어의 정체는 대체 뭐지?..”
싸이코 같은 새ㄲ
보자마자 웃음 반 충격 반으로 피규어를 손으로 들어 올려 쳐다보는 내 모습을 본 상문이의 한마디..
“18만원에 산 한정판이야 조심해”
갑자기 18만대 때리고 싶어 졌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카스미가오카 우타하’
어우 씨.. 이름도 왤케 어려워 검색해서 찾아봤네
나는 무슨 애니메이션 피규어길래 이렇게 야하냐고 물어봤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바로….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
처음에 다른 건 모르겠고 “육성방법”??… 이라는 단어를 보고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어왔다.
나도 참.. 보기보다 순수하지 않구나…
나는 상문이한테 되물었다.
“너….혹시 Hard…니??“
상문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형이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애니메이션 아니야!!!” 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네이버에 쳐봤다.
제목 밑에 19세 이상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본 나는
“취향 참 독특하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스토리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리 이상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였다. 근데 피규어는 왜 이리 야하냐고 묻자 이렇게 만들어야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건 씹 ㅇㅈ…
만드는 사람도 좋겠는ㄷ?
충격은 이게 끝이 아니였다. 사실 이 피규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집에 더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 놀 자리가 얼마 없어서 집에서 다 가져오진 않았다고 한다.
ㄲㅂ…???~~
그냥 이쁜 캐릭터면 다 좋아할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름 피규어를 고르는 애만의 기준들이 있었다. 상문이가 피규어를 사는 인터넷 사이트가 하나 있는데 나에게 온갖 피규어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상문이가 피규어를 고를 때 보는 기준들은 아래와 같다.
- 일단 인증된 메이커가 만든 피규어여야 한다.
“내 연구실에 있는 3D 프린터로 만들어도 될거 같은데??..”
- 가슴이 너무 인공적인 티를 내지 말아야 된다.
“니가 지금 방에 가져온 피규어가 젤 인공적인데??”
“무슨 얼굴보다 크네..”
- 허리가 비정상적으로 가늘면 안 된다.
“저기요.. 니 피규어가 젤 가늘어…“
-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출연 중인 캐릭터야 한다.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이란 애니는 들어본 적도 없다 이 새갸”
-
너무 많이 걸치고 있으면 안 된다.????
피규어는 365일 여름이야?
- 무엇보다 이뻐야 한다.
“현실에 좀 살자”
(…)
이 외에도 수많은 기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쓰는 내 자신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쓰려고 한다.
상문이가 입주하는 날 상문이 부모님을 만나뵙고 같이 살면서 제대로 교육 시키겠다고 했건만…
어머님, 아버님… 애는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자리잡은 요염한 자태의 상문이의 피규어
“그래 뭐 사람마다 특이한 취향은 있을 수 있지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클래식 좋아한다고 이상한 취급 받는데 보기 나름이지 뭐”
그런데 이런 것을 좋아하는 애 치고는 상당히 보통 또래 성인과 같은 행동을 해서 전혀 구분이 안 된다. 애니메이션을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타쿠 마냥
“우타하쨩~, ~라능!, ~하다능!!”
이러고 다니는 애도 아니다. 그냥 매우 똘똘하고 평범한 아이이다.
아마ㄷ?…
그렇게 같이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상문이는 일이 있어서 주말을 집에서 보내게 되어서 기숙사엔 나 혼자만 남아 있게 되었다. 청소를 하던 중 내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책 하나가 상문이 자리에 꽂혀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매일 듣곤 하는데 상문이도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다.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카톡을 날렸다.
허락을 받은 나는 책을 집어들고 중간에 책갈피가 꽂혀 있는 쪽을 폈다.
부모님의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기 시작했ㄷ……
나는 상문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책갈피가 꽂혀있는 책의 내용을 보면 안토니오 로티가 작곡한 ‘십자가에 못 박혀’라는 곡을 설명하고 있는데… 정말 책갈피랑 뭔가 분위기가 매우 상반된다…
이정도면 거의 종교 모독인데?…
이런 책갈피도 있구나 하면서 본 책갈피의 반대면
“상문아.. 너는 웬만한 여자한테 만족하기 힘들겠구나…”
일단 흔들리는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다른 책을 펴봤다.
이런 인문 지식에 관한 책을 읽는 상문이의 식견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 책도 중간에 책갈피가 꽂혀 있는 거 같아서 펴보니…
설마가 사람 잡았다… 타이레놀 좀 먹어야겠다..
그래 뭐 이 정도는 양호 한 거지 그래도 무언가를 많이 걸치고 있잖아??
정말 상문이 너란 남자….. 보면 볼수록 매력 있구나?~
감탄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상문이의 클래식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읽으니까 바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역시 책만한 수면제가 없어~
졸음이 갑자기 밀려와서 그냥 불을 끄고 자려고 누운 순간 갑자기 잠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옆 상문이의 침대를 바라봤는데 이마트에서 필수품 사러 같이 간 날 샀던 펭귄 인형이 보였다.
당시 상문이는 “나는 무언가를 끌어안고 자야 잘 수 있어” 라며 매우 유심히, 실용성을 따져가며 여러 인형들을 이마트 안에서 끌어 안아보고 많은 시간을 들여 이 펭귄 인형을 선택했다. 정말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옆에서 정색하며 벌레보듯 쳐다봤다….
잠이 너무 안 와서 옆 침대에 있던 펭귄 인형을 내 침대로 가져와 끌어안아 보았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9시간 꿀잠 잤네…